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 무신론 (문단 편집) === 냉전 이전 === [[러시아 혁명|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기 당시, [[정교회]]는 백군파의 편을 들었고 점차 백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서 군사적인 보호를 받지 못 하고 무방비해진 정교회의 여러 종교 시설들은 [[볼셰비키]] 적군에 의한 초법적 테러, 그리고 재산 몰수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 정교회를 사실상 통치했던 신성종무청이 폐지되면서 다시금 대주교를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소련]]이 건국되었고, 1929년 [[소련 공산당]]은 종교의 자유 뿐 아니라 반종교 선전의 자유 역시 중요하다고 말하며, 내전과 레닌 시기 종교에 대한 초법적 대응의 형태가 아닌 러시아 시민 사회의 의지를 명목으로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무신론화에 중점을 두게 되고, 이를 부추길 '전투적 무신론자 연맹' 같은 기관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 자리에선 여느 소련의 일들이 그러했듯, [[이오시프 스탈린]]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가난에 의한 선택이었을지언정 신학생 출신이었던 만큼 종교와 교회들의 작동 원리에 대해 잘 알았고, 구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인들이 가졌던 맹목적인 믿음을 어떻게 한다면 공산당에 대한 믿음으로 돌릴 수 있는 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행했다. 정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 조직들은 이후 공산당에 의해 헌금을 비롯한 여러 경제적 수단들이 제한되자 자체적으로 촛대 등을 만들어 팔아 교회의 유지수단으로 삼게 되는데에 이에 공산당이 직접 이에 대하여 시민들을 선동해 판매실적을 악화하거나 하는 등의 행보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잠시 그런 정교회에게도 숨통이 트이게 될 날이 오게 되니, 바로 [[2차 세계 대전]]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은 [[모스크바]] 앞마당까지 [[독일 국방군|독일군]]에게 밀리게 되고 점차 절박해진 [[소련]]의 전쟁 프로파간다는 좌우의 경계가 없이 그동안 소련 내에 터부시되고 탄압되던 민족주의, 종교, 애국주의 등을 통한 선전도 사용하게 된다. 이때 [[스탈린]] 역시 종교적 선동에 기꺼이 동참하였으며 심지어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거주 중이던 성녀 마트로나 니코노바와 만나는 이콘까지 그려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